“이깟 문자, 주상 죽고 나면 시체와 함께 묻어버리면 그만이지” 문자와 지식을 권력으로 독점했던 시대 모든 신하들의 반대에 무릅쓰고, 훈민정음을 창제했던 세종의 마지막 8년. 나라의 가장 고귀한 임금 ‘세종’과 가장 천한 신분 스님 ‘신미’가 만나 백성을 위해 뜻을 모아 나라의 글자를 만들기 시작한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모르는 한글 창제의 숨겨진 이야기! 1443, 불굴의 신념으로 한글을 만들었으나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 감독의 말 ] 이 땅 오천 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성취는 팔만대장경과 훈민정음이라 생각한다. 그 두 가지를 영화화하겠다는 희망을 품은 지 15년째다. 몇 년 전, 그 두 가지 사이에 신미 스님이란 연결고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훈민정음 해례본 속에 그걸 입증하는 훈민정음 코드가 있다는 걸 확인한 후, 작가들과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환갑에 감독 데뷔라니. 13편이나 연출을 한 친구에게 물어봤다. “연출, 어떻게 해?”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너무 잘하려 하지마. 시나리오 쓰고 캐스팅 끝나면 연출의 90%는 끝난 거야.” 다시 질문했다. “나머지 10%는?” 그 역시 대답은 간단했다. “하다 보면 알게 돼” 촬영장에서 나는 ‘저것’과 ‘이것’ 사이에서 끊임없이 망설였다. 저것은 내가 머리로 기대하는 것이고, 이것은 제작진과 배우가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나머지 10%는 바로 ‘그것’이었다. 저것을 포기하고 수많은 이것들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 세종이 위대하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그건 결과에 대한 평가일 뿐이다. 감독의 탈을 쓰고 연출을 하면서 진정 위대한 것은 좌절과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에 있다는 진부한 사실을 배웠다. <나랏말싸미>는 새 문자를 만드는 과정을 씨줄로 그에 얽힌 사람들의 인연을 날줄로 엮은 이야기다. 감독 조철현 [ 영화에 대하여 ] 세상에서 가장 쉽고 아름다운 문자 ‘한글의 시작’! <나랏말싸미>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다! 물과 공기처럼 당연한 듯이 쓰고 있는 한글. 과연 세종대왕 한 사람의 머리에서 이렇게 배우기 쉽고 과학적인 원리를 가진 문자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한글에 관련된 영화를 마음에 품은 이후 십수 년 동안 조철현 감독이 가졌던 의문과 영화화의 실마리는 실존 인물인 ‘신미 스님’에서 나왔다. 억불정책을 가장 왕성하게 펼쳤던 임금인 세종이 죽기 전 유언으로 신미 스님에게 ‘우국이세 혜각존자(祐國利世 慧覺尊者)’-나라를 위하고 세상을 이롭게 한, 지혜를 깨우쳐 반열에 오른 분-이란 법호를 내렸다는 기록과 김만중의 ‘서포만필’에 있는 훈민정음과 불경을 기록한 문자인 범어(산스크리트어)와의 관계 등은 한글 창제와 관련된 여러 가지 설 중에 하나로, 신미 스님이 했던 역할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불교 국가인 고려를 뒤집고 유교를 국시로 창건된 새 왕조 조선의 임금인 세종이 스님과 손을 잡고 한글을 만들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그들이 어떻게 만나게 되는지, 역사가 미처 기록하지 못한 그들의 인연을 날줄로, 그리고 아픔과 고민 속에 잉태된 한글이 어떤 원리를 가지고 마침내 태어났는지 그 창제의 과정을 씨줄로 짜여진 <나랏말싸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지식을 독점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권력 또한 독점하고자 했던 유신들에 맞서 ‘모든 백성이 문자를 읽고 쓰는 나라’를 꿈꿨던 세종의 이상이 어떻게 현실로 구현되었는지, 가장 높은 곳의 임금과 가장 낮은 곳의 스님인 세종과 신미의 인연과 협업, 충돌의 과정 속에 그들과 함께 한 소헌왕후, 대군들, 신미의 제자이자 도반인 스님들, 새로 태어난 문자를 익혀 퍼뜨렸던 궁녀들까지. 훈민정음 서문의 첫 마디인 ‘나랏말싸미’를 제목으로 한 영화는 개인의 업적이 아닌 ‘모두’의 성취였던 한글, 그 이면의 이야기를 재미와 울림 속에 전한다. 세종 송강호-신미 스님 박해일-소헌왕후 전미선 한글 탄생의 연대기 속 위대함 뒤에 가려진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다! 위대함이란 무엇인가? 한글에 대한 흥미와 더불어 감독을 사로잡았던 것은 사후에 평가되는 위대함의 이면, 그 실체에 관한 것이었다. 모든 위대함은 상처와 실패를 딛고 이뤄진 것이 아닌가라는 깨달음은 세종과 신미, 소헌왕후가 그려내는 삼각형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위대한 임금인 세종은 실제로는, 황제의 나라인 중국에 대한 사대(事大)와 공맹의 진리를 빌미 삼아 왕권 강화를 견제하는 유신들의 압박에 시달리고 평생을 괴롭힌 질병에 고통받고, 사랑하는 아내의 상처조차 걷어줄 수 없는 남편이었다. 세종 역시 우리와 똑같이 좌절하고 고뇌하는 평범한 인간이었다는 것부터 시작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바람은 어떤 인물이건, 실감과 입체성을 더해 약동하는 감정으로 기억되게 하는 송강호로 인해 스크린 위에 성공적으로 구현되었다. 위인전의 주인공이 아닌, 고뇌와 번민 속에 좌절과 성취를 함께 겪는 위대함의 뒤편에 숨어 있는 인간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세종을 지켜보는 것은 한글 창제 과정의 역동성과 더불어 <나랏말싸미>가 가진 가장 큰 재미 중에 하나다. 또한 천한 불승에게 ‘난 공자를 내려놓고 갈 테니, 넌 부처를 내려놓고 와라’라는 세종의 배포와 이에 ‘아니오. 나는 부처를 타고 가겠습니다. 주상은 공자를 타고 오십시오’라며 맞받아치는 신미의 배짱은, 서로가 믿는 진리의 차이를 넘어 서로를 인정하고 한 길을 갔던 두 위대한 존재들의 동행과 엇갈림,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단적으로 전한다. 하늘과 땅처럼 멀리 떨어져 있던 두 사람을 만나게 해, 소리글자인 한글 탄생의 첫 단추를 끼운 것은 물론, 신하들의 감시의 눈길 등 장애물이 나타날 때, 이를 푸는 해법을 제시하는 현명한 여장부 소헌왕후는 이 둘의 인연이 한글 탄생까지 이어지게 하는 큰 역할을 한다. 성격과 신념, 서로 다른 상처와 번뇌를 가진, 세 사람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송강호와 박해일, 전미선으로 <살인의 추억> 이래 16년, 길고 긴 인연을 <나랏말싸미>의 재회로 완성했다.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품는 대범함, 서로 다른 욕망으로 인한 대립,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을 위한 문자’라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며 서로 수렴해 가는 세 사람의 관계는 연기 잘하는 세 배우들로 인해 입체적인 파고를 가진 이야기로 살아났다. 자음과 모음, 총 28자의 한글이 탄생하기까지! 한글 창제 과정의 드라마 오늘의 우리에게 울림을 전하다! 중국의 각종 언어학 서적을 섭렵했음에도 새 문자의 실마리를 잡지 못해 괴로워하던 세종. 단서는 엉뚱하게도 조선이 억압했던 불교의 유산인 ‘팔만대장경’ 안에 있었다. 세종은 신미를 통해, 불경을 기록하기 위해 만들어진 소리글자인 산스크리트어를 접하고 ‘소리글자’로 방향을 잡지만, 먹고 살기도 벅찬 백성이 배워서 쓰려면 무조건 쉽고 간단해야 한다는 새 문자의 원칙 앞에서 쉽게 길을 찾지 못한다. 발성기관의 모양을 따 어금니 소리 ‘ㄱ’ 혓소리 ‘ㄴ’ 입술소리 ‘ㅁ’ 잇소리 ‘ㅅ’ 목소리 ‘ㅇ’으로 기본자가 만들어지고, 이후 소리를 채집하고 분류하기까지.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담을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이들은 임금인 세종, 왕자인 대군들, 스님 등 신분도 종교의 차이도 가볍게 뛰어넘는다. 소리글자인 한글이 그 형태를 찾아가고 갖추어 가는 과정에 대해서는 언어학자와 종교학자 등 전문가들의 자문을 바탕으로 철저한 고증을 거쳐 역사적 사실성을 더해 더욱 실감나는 드라마를 완성했다. 세상의 지엄한 질서와 달리 수양과 안평, 두 왕자에게 천한 신분인 신미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라고 말하는 세종의 모습은 ‘한글’ 창제 과정 자체가 전복의 이야기일 수 있었음을 시사한다.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향해 마음을 합쳐 달가는 이들을 응원하듯 지켜보게 하는 <나랏말싸미> 속 한글 창제의 과정은 완성의 순간과 벅찬 감동을 전한다. 또한 구중궁궐 안에 깊숙이 숨어있었을 법한 중전과 궁녀들이 정작 태어나자마자 유신들에 의해 사장될 수 있었던 ‘한글’의 명맥을 보존한 장본인이었다는 점도 영화 <나랏말싸미>와 ‘한글’이 가진 아름다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새 문자를 반대하는 유신들에게 “공자가 부처를 만났대도 이러진 않았을 것”, “나는 부처의 말도 진리라 생각한다. 세상이 진리 때문에 망하지는 않는다. 서로를 이단이라 삿대질하며 제 밥그릇만 챙기다 망하는 것이다”, “너나 나나 백성들이 지어준 밥을 빌어먹고 살지 않느냐?”라고 말하는 세종의 대사들은 500여년 전 조선을 살아갔던 이들의 모습을 통해 오늘의 우리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긴 울림을 남긴다. [ 제작 이야기 ] 해인사 장경판전부터 부석사 무량수전, 안동 봉정사까지! 한국 영화 최초로 만나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천년의 역사가 깃든 웅장하고 깊이 있는 공간이 선사하는 탁월한 경험! 한글 창제 과정을 다룬 <나랏말싸미>에는 기존의 영화와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누구나 쉽게 갈 수 없는 역사적인 공간들이 등장한다. 시나리오 작업 과정에서 세종과 함께 뜻을 모아 한글을 만든 신미 스님의 행적을 따라 전국 곳곳의 사찰을 다녔던 조철현 감독은 영화 속 상징적인 공간들을 실제 역사가 깃들어 있는 문화유산에서 촬영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제작진은 6개월 이상 문화재청의 문을 두드리며 오랜 기간에 걸친 긴밀하고 정교한 회의 끝에,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부터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안동 봉정사까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문화 유적지를 한국 영화 최초로 스크린에 담아낼 수 있었다.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하나인 해인사의 장경판전은 현재 팔만대장경판의 온전한 보존을 위해 내부 출입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세종과 신미가 한글 창제의 뜻을 모으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한글 창제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팔만대장경의 실물을 관객들은 영화에서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나랏말싸미>에는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목조 건물 중에서도 오래된 건물로 꼽히는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안동 봉정사를 비롯한 경복궁, 창덕궁, 곡성 태안사, 순천 송광사 국사전 등 자랑스럽고 유서 깊은 건축물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인위적인 작업으로는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색감과 오랜 세월의 깊이가 겹겹이 쌓인 구조물들로 이뤄진 역사적인 공간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다채로운 볼거리를 선사하며 한글 창제가 이루어지는 1443년의 시간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 것이다. 궁과 절의 건축적 특징과 기하학, 천문학, 철학까지 담긴 훈민정음! 한글 창제 과정 속 미적 아름다움을 녹여낸 프로덕션 디자인! 고증과 현대적 해석을 통해 그린 <나랏말싸미>의 황홀한 미술 세계! 세상에서 가장 쉽고 가장 아름다운 문자 한글의 창제 과정을 영화화한 <나랏말싸미>의 류성희 미술감독은 훈민정음이 탄생하기까지 그 과정 속에 녹아있는 디자인적 요소를 시각화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춰 작업에 임했다. 조선 초기 궁과 절의 건축적인 특징과 기하학, 천문학, 철학까지 담겨있는 훈민정음의 점과 선, 면으로 이루어져 단순하지만 시선을 사로잡는 미적 아름다움을 살리기 위해 세트 건축 과정에서도 간결함이 돋보일 수 있도록 했다. 보통의 사극 영화가 궁의 거대함과 화려함, 눈을 사로잡는 원색적인 색채 구현에 힘쓴 것과 달리 <나랏말싸미>는 훈민정음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 과정에 집중될 수 있도록 배경이 너무 화려하거나 튀지 않게 최대한 덜어내는 작업을 거쳤다. 조선시대 궁궐과 사찰이 가지고 있는 기하학적인 선에 포인트를 주고 문화가 융성한 공간 안에서 인물들이 서로 만나고 부딪힌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던 제작진은 최대한의 고증을 거치며, 여기에 현대적 해석을 더해 <나랏말싸미>만의 특색을 만들어갔다. 가장 오랜 시간을 들여서 신중하게 작업했던 것은 불상과 가마, 그리고 불화다. 무위사 삼존불을 모델로 한 불상은 디지털 데이터를 토대로 3D 프린팅 작업을 진행, 실물과 동일한 사이즈로 제작된 제작물에 손수 금사를 하나하나 입혀서 탄생한 작업물로 제작진의 열과 성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극중 세종과 소헌이 타는 가마는 제작진이 천 하나, 실 하나하나를 직접 고르고 구성하여 마치 조선 초기 실존했을 법한 왕가의 가마를 만드는 식으로 제작해 나갔다. 여기에 사찰의 한쪽 벽면을 모두 차지하는 거대한 불화의 경우 조선 초기 이전에 만들어졌던 불화를 찾아, 화질이 좋지 않은 자료들을 실제 문화재를 복원하는 마음가짐으로 최대한 비슷하게 구현하려 노력했다. 뿐만 아니라 이주형 서예가 외 내로라하는 서예가들의 협업으로 6개월 동안의 연구와 연습, 제작 과정을 통해 탄생한 <나랏말싸미> 속 훈민정음 서체는 점과 선, 면으로 이루어진 한글의 아름다움과 힘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한글뿐만 아니라 영화 속에 등장하는 티베트어, 파스파 문자, 산스크리트어도 이들의 손에 의해 탄생했다. 이처럼 <나랏말싸미>는 가장 낮은 곳에서 왕인 세종과 함께 힘을 합쳐 한글 창제를 도왔던 신미와 학조, 학열 등 스님들의 이야기를 담은 만큼 우리나라 영화에서 많이 다뤄지지 않았던 사찰이나 불상, 조선 초기의 미술품들을 프로덕션 디자인에 적극 활용하여 관객들에게 색다른 시각적 체험을 선사할 것이다. 가장 높은 곳의 용포부터 가장 낮은 곳의 승복까지! 8개월간의 제작 과정, 총 제작 의상 수 2,000여 벌! 철저한 고증과 인물의 감정을 녹여낸 <나랏말싸미>만의 스타일! 조선 전기의 이야기를 다룬 <나랏말싸미>의 스타일은 그 시대의 복장을 관객들이 편하게 느낄 수 있도록, 과하지 않은 느낌을 주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미션이었다. 조철현 감독은 미술과 의상, 인물 간의 조화를 가장 중요시했고, 수많은 회의를 거쳤다. 이에 심현섭 의상 감독은 전통적인 패턴과 고증을 기본으로 하지만, 각 장면 속 인물들의 감정까지 의상에 녹여내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약 8개월가량 디자인과 제작 과정을 거쳐 총 2,000여 벌의 의상을 만들어냈다. 세종대왕(송강호)은 가장 많이 입는 용포를 입었을 때, 특별함보다 기본적인 고증의 컬러나 옷의 형태를 살리려 했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황토색 등의 내추럴 계열의 톤을 사용했으며, 왕으로서의 기본적인 품새를 위해 19겹의 의상을 겹겹이 입혀냈다. 신미 스님(박해일)은 숭유억불 상태로 가장 낮은 신분이지만, 가장 높은 곳의 왕 앞에 당당한 모습을 살려내고자 했다. 소박하지만 거칠고 야생적인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승복 하나하나 손 염색을 거치고, 손바느질로 질감을 다르게 만들어냈다. 신미 스님을 비롯한 스님들의 승복은 장장 4개월 동안 수작업으로 제작되어, 단 한 벌도 같은 의상이 없었다. 소헌왕후(전미선)는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혹은 딸로서의 슬픔을 간직한 여인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명도와 채도를 조절해 분위기에 따라 다양한 느낌을 내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최대한 고증을 살리지만, 캐릭터의 특징을 담아낼 수 있는 분장과 소품으로 인물을 완성해냈다. 세종대왕의 실제 얼굴에 똑같이 접근하기보다는 배우의 얼굴 라인과 형태에 맞춰 수염을 그렸고, 인자하고 올곧은 성품이 보이도록 만들었다. 상투관의 경우, 세종부터 문종, 수양, 안평까지 장식이나 관자 등에 디테일을 다르게 주어 개성을 살렸다. 신미 스님을 비롯한 스님들은 거의 매일 머리를 깎아야만 했으며, 소헌왕후는 장신구를 포함 4kg이 넘는 가체를 올리기도 했지만, 쪽머리를 하는 등 약간의 디자인을 가미해 왕후만의 스타일을 만들었다. 이처럼 수많은 과정을 거듭한 끝에 고증과 캐릭터의 특징을 적절히 섞어 완성된 <나랏말싸미>의 스타일은 영화를 보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다.